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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그립지 않은 스미스에게

안녕?
우리에게 그런 일이 있었지만 방학은 어김없이 찾아왔네. 앞으로 남은 몇 개월도 널 보지 못함이 조금쯤 아쉽게 느껴지는 여름이야.

방학식을 올린 지 한 달밖에 안 되어서 그런가 내 일상엔 커다란 변화는 없어. 그래서 네게 편지를 보내. 답장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줄이라도 답장-이 부분은 밑줄과 함께 별표가 그려져 있다-이 오면 정말 좋겠다.

물론 강요는 아냐. 반쯤 재미로 쓰고 있는 거거든. 모건과 함께 맞춘 안경 말야, 정말 잘 맞아. 더 이상 찡그리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으니 한결 편해졌어. 부러질까 애지중지 해서 정작 쓰고 있는 시간은 얼마 없지만, 그래도.

바깥 상황이 점점 위험해져서 그런가, 이번 방학도 어김없이 외출 금지더라고. 그래서 이 칙칙한 집에 세 가족이 모여서 얼마나 더 우중충해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만 같아. 코 앞 마트마저 못 가게 한다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아버지 본인에게 전달하래. 순간이동 못하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그렇게 하루종일 내 방에만 있는 실정이야. 정말이지 심심해 죽겠어. 차라리 방학마다 학교에 남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명색이 기숙 학교면서 그런 거 하나 안 해주고, 너무 게으르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그럼 금서구역도 찾아보러 다닐 수 있을 뿐더러 … . 병동도 가까워서 부담없이 갈 수 있고.

사실 마지막으로 본 네 상태가 조금은 걱정되더라고. 그야 그럴게 벨은 모래로 변해 사라졌는데 넌 갈증이 난다고 했잖아. 연관성을 찾고자 한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소심하게 징징거리는 책이 낫게 하는 방법이라도 알려주면 좋을 텐데 그럴 기미는 전혀 없으니 너무 답답해. 이래가지고는 거창하게 모두의 염원을 짊어진 아이들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지 않나. 물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말야.

하여튼, 건강하게 있으라고. 어차피 학교에서 만날 거니 이만 줄일게.

잘 지내.

점점 더워지는 1994년 여름의 어느 날, 메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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