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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서 봤을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플리모스에서 괴물이 나타났지(그곳은 데본포트와 같은 지역이라네.). 그래서 쓰고 있던 편지를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네. 사과하도록 하겠네.
   그것이 처음 나타났을 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네. 나 역시 마찬가치였지. 그것의 존재는 결국, 우리가 겪은 시간이 어떤 형태로든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많은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네. 부서졌던 건물들은 확실하게 치워지거나, 이리저리 기워서 다시 기능을 하기 시작했고, 닫았던 가게들은 다시 손님을 받기 시작했네. 아이들은 다시 거리를 걷고 학교를 간다네. 어머니의 병원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바쁜 상태에서는 벗어났어. 하지만 돌아오지 않은 것들도 있지. 조금 더 안전한 곳을 찾아서 떠난 사람들이나, 인류가 일궈낸 위대한 세계가 언제까지나 자신만만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도시의 불빛이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따위 말일세.

   아마 짐작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과자를 구울 적당한 시간과 재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네. 하지만 선물은 무사히 잘 받았네. 제빵에 관심이 깊고 실력도 좋은 레이첼(그녀는 쌍둥이 중 늦게 태어난 쪽이라네.)이 무척 좋아하더군. 자네 아버지의 말에는 낙담하지 말게나. 자네는 내 동생들이 기뻐하기를 바란 것이고, 나는 그 의도가 기쁘므로, 이것은 이기적인 선물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네.
   4년이 된 의문이지만, 나는 아직도 왜 자네가 내가 만든 빵이며 쿠키를 고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네. 분명히 맛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자네는 마음이 담기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니 그것이 정답일까. 어쨌든, 이번에는 음식 대신 수선화를 동봉했다네. 물론 생화는 아니야. 괴물의 습격 후 며칠 동안은 우리도 집에서 보내며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언제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쓰셨는지 모를 코바늘 세트와 실을 발견했거든(솜씨가 꽤 좋아 보인다면,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해두겠네.).

   두 주 후면 기차역에서 만날 수 있겠군.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네.

   안부를 전하며,
   로웬 그레이스
   19.08.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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